취미/독서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리벨로 2020. 3. 30. 21:43
반응형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에 대한 심심한 현실

- 하현 작가의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를 읽고

 

 

 

독특하다. 분명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한 책인데 에세이다. 저자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날부터 약 1년 동안의 날들을 기록했다. 그러나 악착같이 스페인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은 했지만 점점 지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저자의 어떤 설렘이 느껴진다. 스페인어를 선택한 것에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말에서 약간의 흥분이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모르고 있던 스페인어 단어를 알게 된다거나 하는 소소한 기쁨 등은 감출 수가 없다.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접근성이 뛰어난 학원을 찾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어였고 배워 본적 없는 낯선 언어였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스페인어였다. 그다지 멀지 않은 홍대에 학원이 있어서였나,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언어라는 말에 혹해서였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특별해 보여서 였나. 적당한 노력으로 대단한 결과를 이루고 싶은 도둑놈 심보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은 욕심. 그런 마음이 나를 배움의 길로 인도했다. 배움이란 무릇 숭고해야 한다고, 세상은 지금껏 나를 그렇게 가르쳤지만. 아니, 왜 꼭 그래야 하지?

 

 

 

최근 퇴근 후에 독학으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로서는 무심한 듯 100퍼센트의 열정을 다하지 않으면서 스페인어를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흥미와 동기가 떨어져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었다면 스페인어 자격증을 취득한다거나 스페인 여행에서 스페인어 실력을 발휘한다거나 하는 해피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페인어에 대한 열정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고 포기해도 괜찮다는 근래의 에세이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책을 다 읽은 후에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항상 성공할 수는 없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다는 부분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겠지만 스페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거나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잠시 닫아두었다가 1년 후 쯤에 열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반응형